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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단지 - 시차와 시대착오 도서의 책소개, 저자소개, 발췌문

keepcalm1 2024. 2. 16.

화려한 색감, 가차없는 전개로 컬트적인 인기를 누린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2006)은 2024년 현재도 OTT에서 인기리에 소개되는 작품이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상처를 품고 학교 선생님이 된 한 젊은 여자가 도난 사건을 해결하던 중 사소하고 불운한 사건 몇 개를 거듭하며 몰락해 못생긴 노파가 되어 쓸쓸한 결말을 맞는다는 이 영화는 어떤 여성에겐 슬래셔 영화보다 더 공포스럽다. 

 

 책 소개

단편소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로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거머쥔 소설가 전하영의 첫 소설집 『시차와 시대착오』가 드디어 독자의 곁을 찾는다. 저온을 유지하는 차분한 문장, 롱 테이크로 촬영중인 영화 속 장면을 좇는 듯한 안정적인 호흡, 현실적인 에피소드의 중첩이 만드는 서사의 부피감, 그리고 그 속에서 문득 돌올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삶의 아이러니를 통해 전하영은 자신의 소설에 세련된 분위기와 신선한 감각을 동시에 불어넣었다.전하영 소설의 참신함이 그가 추구하는 소설쓰기의 방식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소설가로서의 전하영은 ‘아트 디렉터’라 불릴 만한데, 다양한 예술 분야를 소설 안으로 왕성하게 끌어와 배치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를 공부하고 영상 예술가로 활동한 이력을 지닌 그는 텍스트를 마치 필름처럼 편집하는 장기를 발휘하여 영화를 닮은 장면 전환을 구현하고(「영향」 「남쪽에서」), 실제로 출품해도 손색없을 가상의 미술작품을 창조해 주요한 이미지로 활용한다(「당신의 밝은 미래─현대미술 작가로 살아남기」).직접 촬영한 사진을 소설의 뼈대로 삼아 문학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흥미로운 시도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다(「JHY를 위한 짧은 기록」). 그뿐 아니라, 우연히 조우한 기성 문학·영화·미술 작품들에 독자적인 맥락을 부여해 소설 속에 녹여내는 순발력과 탁월한 연출 감각은 전하영 소설만의 깊고 풍부한 스타일을 완성해낸다.

 

 저자소개

전하영 작가. 2003년부터 2017년까지 다수의 단편영화와 영상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2019년 단편소설 「영향」으로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로 2021년 제12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전하영 작가의 말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그 작은 방에서부터 소설을 써왔던 건 아니었을까. 왜 하필 소설인가, 라는 질문에 그것은 언제나 소설이었다는 대답. 어릴 적 그 방에서 시작한 이야기의 씨앗을 키우기 위해 지난 수십여 년을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다면 내가 했던 성과 없는 허무한 모험들에도 다 제각각의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대는 작은 여자아이들의 방은 이제 내 마음속에 있다. 여행 끝에 도착한 곳은 소설이었다. 그 세계는 거대하지만 단 한 권의 책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기도 하다. 나는 이 세계를 사랑한다. 그렇다.

 

 발췌문

어느 평화로운 주말, 수영장에 갔다가 그 옆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계산할 때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계산 직후 숙희를 흘끔 보더니 포스기에 ‘중년 여성’이라 쓰인 견출지가 붙은 버튼을 탁, 하고 내리쳤던 것이었다. 그 버튼 옆으로는 ‘젊은 여성’ ‘노인 여성’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만족스러운 문장을 적은 소설가가 그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기 위해 경쾌하게 엔터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단순하고 분명하고 무의식적이기 그지없는 손짓에 의해 숙희는 중년 여성이라는 세계에 입문했다. _「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더이상 예술만으로 만족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없어졌다는 것.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대학원에 진학하고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지난 수년간의 삶이 전생처럼 멀게 느껴졌다. 결국 그놈의 유학병 하나 고치려고 그 돈지랄 대잔치를 했던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도 하듯 자아도취에 빠져서. 현실은 아버지에게 빌붙어 기생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는데도. 애초에 언제 그만두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생활을 고집스럽게 이어갔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토록 사랑하던 세계를 어째서 이렇게나 쉽게 내쳐버리게 되었는가. 그녀는 스스로가 만든 정교한 함정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너무나도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자신이 인생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수록 그녀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_「시차와 시대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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